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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oong--/끄적끄적

최인훈의 '광장'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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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정말로 이게 뭐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책을 반정도 읽다가 짜증이 치밀어서 책을 덮고 머리를 식힌 뒤에 마저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난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찾으려고 애를 써봤고, 끝끝내 절대로 도달하고 싶지 않은 결말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자신이 서있을 광장을 찾지 못한 채 목숨을 끊은 주인공. 이 작가는 도대체 뭘 원하는거지? 주인공처럼 살지 말아라~ 라고 하는건지 주인공처럼 사상과 이념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하고 공부한 뒤에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이상적인 세계관을 갖고 그 이상이 '이미' 이루어진 곳을 찾다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포기하라는 것인가?

 나와는 달리 문학적인 지식이 뛰어난 평론가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여질 지 모르겠지만 나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을 때 처럼 또다시 실망감을 느꼈다. 난쏘공의 난쟁이는 자신에게 너무나 가혹한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루어 질 수 없는 이상세계를 꿈꾸며 굴뚝에서 뛰어내렸다. 난장이는 현실에서 죽도록 노력해봐도 나아지지 않고, 현실과 자신이 원하는 이상 사이에 놓여진 커다란 절벽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자살을 택했다. 하지만 나는 난쏘공을 읽고서 느낀 건 있어도 얻은건 없었다. 과연 작가는 난장이의 죽음으로 책을 끝마쳐야 했을까? 그리고 그 책을 읽은 사람들도 자신의 삶에 희망이 없으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니라고 믿는다. 작가는 모순된 사회 구조를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보고서 비판적인 관점을 가진 것이 아니라 비관적인 관점으로 그 당시 사회를 바라보게 되었다. 얏! 내가 이 모순된 사회를 개혁해주겠어! 이게 아니라 하...망할놈의 부르주아들. 난 가난하니까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지... 이런 느낌을 받았다.(물론 저런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런 모순된 사회를 개혁해보자는 의지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무기력증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 광장이라는 책에서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이명준은 철학과를 나온 지식인이다. 사상과 이념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있었고, 자신의 이념에 맞는 사회를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자신이 보기에는 남한의 광장(이 책에서의 광장을 나는 자신의 이념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해석했다.)은 이미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들은 모두 썩어 문드러지고 돈과 쾌락만이 남지 않은 남한에 명진은 진저리가 난다. 그 때 과거에 자신을 두고 월북하신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나오고 있다는 것 때문에 명진은 경찰서에 불려가서 간첩 취급을 당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명진의 멋진 모습을 기대했다.. 난쏘공의 난쟁이는 배우지도 못하고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노력파였다면 명진은 지식인이였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해 공부하고 끊임 없이 생각하는 그 시대의 지식인이란 말이다. 그런 명진은 반드시 자신의 사상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형사에게 대항할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명진은,  형사의 협박에 못이겨서 아버지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권력가 변선생 얘기를 계속 해서 어떻게든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고한다. 난 명진이 형사에게 맞는 부분을 보면서 명진이란 사람은 자신의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기 때문에 비록 지금 눈 앞의 힘에게 무너져 맞고있지만 나중에는 자신의 신념을 꿋꿋히 지키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고,  그 내용이 이 책의 주제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명진은 그런 자신의 처지와 남한의 썩은 사회를 비관하며 형사의 폭력에 못이겨 월북하고 만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사회의 모순된 점을 깨닫고, 그걸 해결해야한다는 필요성도 절실히 느끼는 지식인이라면, 적어도 노력은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명진은 쓰레기와 오물이 가득한 남한의 광장을 꺠끗하게 바꿔보려는 생각도 안하고 자신의 밀실에 쳐박힌채 남한에서 도망쳐버렸다. 이 모순된 현실을 바꿔보리라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고 있으리라 믿는 북한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이 곳도 마찬가지. 명진이 원하던 혁명의 열정은 이미 사그라졌다. 시민 한명 한명이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혁명을 일으키는 그런 일은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공문 혁명, 개인이 아닌 당에서 하는 혁명, 지금도 진행중인 혁명이 아닌 '이미' 일어난 혁명. 그것이 북한의 모습이였다. 남한에는 썩은 광장이라도 있었다면 북한에는 아예 광장조차 없었다.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거라고 예상한 아버지조차도 자신만의 밀실속에 숨어서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고분고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던 명진도 별 다를게 없었다. 자신이 일하던 신문사에서 왜 당에서 명령하는데로 기사를 쓰지 않고 사실 그대로 옮기느냐는 얼토당토않는 지적을, 명진은 그냥 따르게된다. 당에 대항해보려는 생각조차 안하고, 그냥 이 귀찮은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신념을 팔아버렸다. 자신의 신념을 버린채 혁명을 일으킬 생각조차 않는  명진이 원하는 이상 세계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없을 수 밖에 없었다. 명진은 어쩌면 자신이 생각하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가 아닌 '이미'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나라를 찾고있는 것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디에서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스탈린인지 뭐시기 하는 얘기를 지껄이면서 자신들의 혁명을 정당화하는 당의 행동, 공문 혁명은 진짜 혁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혁명을 일으킬 생각은 끝까지 하지 않고 도망친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큰 실망감과 허탈감을 느꼈다. 아버지의 모습을 비판할 때 그의 모습은 안일함에서 벗어나서 혁명의 열정을 불태우는 혁명가의 모습이였지만 권력자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무너트리는 명진의 모습을 봤을 때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내가 기대했던 자신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혁명의 불씨를 일으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명진의 모습은 사회의 모순을 알면서도 광장에 나가 자신의 주장을 펼칠 생각도 하지 않고 현실에 순응하는 문학시간에 배운 '북어'였다. 결국 명진은 북한의 사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중립국은 행복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빠져서 중립국으로 떠나던 중 자살을 선택한다. 난쏘공의 난쟁이는 동정심이라도 들지만 명진이란 분은 정말로 정도 안가고 동정심은 들지도 않는다. 알고 짓는 죄가 더 나쁜짓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시민이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회를 여러 관점으로 바라보고 개혁하기 위해서 철학을 배운 지식인이 현실에 순응하고 만족하지 못하다가 자살하는 모습은 꼴뵈기 싫을 정도였다. 남한의 썩은 광장을 비판하고, 북한의 공문 혁명을 신랄하게 욕했지만 정작 그가 한것은 무엇인가? 과연 이게 지식인의 모습인가? 모순된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말로만 비판하던 명진이 결국에 선택한건 도망, 결국 명진은 삶에서 도망쳐버렸다.

 나는 이상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상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그 허황된 정도를 떠나서 누구나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게 사상을 반영하던지, 자신의 욕심이나 쾌락을 반영했던지, 어떤 이상을 꿈꾸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이상을 꿈꾸면서 열심히 노력하고, 반성하고, 목표를 다잡는다면 이상은 존재할 가치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명진은 자신의 이상에 오히려 발목이 잡혔다. 자신의 이상에는 발끝만치도 미치지 못하는 사회에서 도피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나라를 찾지만 그런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명진의 도피행각은 잘못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상이 '이미' 이루어진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그 이상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게 맞는데 그럴 용기조차 없으면서 이상을 쫓다가 지쳐서 자살하는 모습은 정말 최악이였다. 큰 꿈을 꾸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된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배짱은 있어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럴 배짱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이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쫓아가기만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져서 걷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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